평양의 두 얼굴: 전깃불이 갈라놓은 위계선
평양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화성거리와 송화거리의 밤은 환하지만, 같은 평양이라도 락랑구역과 만경대구역의 밤은 사정이 다르다. 방학을 이용해 북한을 다녀온 한 유학생이 최근 전한 소식은 단순한 생활 정보가 아니다. 그 안에는 평양이라는 공간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통념 하나를 되짚게 만드는 단서가 들어 있다.
바깥에서 북한을 보는 시선은 대체로 평양을 하나의 덩어리로 다룬다. “평양 시민은 특권층이다”, “지방과 달리 평양은 배급도 낫고 전기 사정도 낫다”는 식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대북 제재의 효과를 논하는 자리에서도, 북한 경제의 이중구조를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평양'은 언제나 예외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전언이 보여주는 그림은 훨씬 촘촘하다. 같은 평양시 안에서도 화성거리·송화거리·중구역처럼 최근 조성되거나 새로 단장된 구역과, 락랑구역·만경대구역처럼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아 온 구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 수준에서부터 격차가 존재한다.
이 격차를 소득이나 계급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만 맞는 이야기가 된다. 북한에서 전력 배정은 성과나 필요가 아니라 정치적 상징성에 따라 우선순위가 매겨지는 영역이다. 최고지도자의 이름이 걸린 사업, 외국 사절단이나 취재진이 드나드는 동선에 놓인 구역은 '보여주기 위한' 인프라 투자의 최우선 대상이 된다. 화성거리와 송화거리는 정확히 그런 자리에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살림집 문제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대대적으로 조성된 신도시로, 준공식마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등장하고 관영매체가 대대적으로 보도해 온 상징 사업이다. 반면 락랑구역과 만경대구역은 이미 오래전에 개발이 끝나 더는 '보여줄' 새로움이 없는 구역이다. 카메라가 향하지 않는 곳에 전력이 우선 배정될 이유도 함께 사라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평양은 예외”라는 통념은 다시 읽혀야 한다. 실제로 예외적 대우를 받는 곳은 평양 전체가 아니라, 정치적 가시성이 높은 몇 개 구역에 불과하다. 대다수 평양 주민이 거주하는 나머지 구역은 지방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전력난과 씨름하고 있으며, 그 공백을 태양광판과 리튬인산철전지로 구성된 개인용 무정전체계로 메우고 있다. 이 장비를 설치할 여력이 없어 여름 내내 정전을 감수해야 했다는 전언자의 말은, '평양 특권'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훨씬 좁은 범위에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다.
이 착시는 자료가 없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까지 나눠 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 북한을 다루는 논의는 오랫동안 '국가' 아니면 '평양'이라는 두 단위 사이를 오갔다. 위성사진이든 탈북자 통계든, 이보다 더 잘게 쪼개 볼 자료가 없어서 거기 머문 것이 아니다. 굳이 구역 단위, 나아가 동(洞) 단위까지 나눠 볼 이유를 누구도 만들지 않았을 뿐이다. 화성거리와 만경대구역의 차이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은 정보의 한계가 아니라 시선의 습관 때문이다. 이번처럼 그 공간을 실제로 다녀온 사람의 목소리가 놓이는 순간, '평양'이라는 하나의 점은 곧바로 여러 개의 구역으로 갈라진다. 문제는 더 정밀한 장비나 더 많은 통계가 아니라, 어느 단위에 시선을 겨눌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일이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두 가지로 모인다. 하나는 '평양 특권'이라는 표현을 쓸 때마다 그것이 평양 전체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몇 개의 상징 구역을 가리키는지부터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을 이해하는 작업이 국가 단위나 도시 단위의 거시적 서술만으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관건은 '평양'이라는 이름 하나로 뭉뚱그려진 공간을, 그 안의 위계선까지 읽어낼 수 있는 해상도로 다시 그릴 수 있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