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 증언이 기록이 되는 순간
얼마전 나온 보고서에 적힌 숫자 하나가 오래 눈에 걸렸다. 2022년 67명, 2024년 236명 — 그해 남쪽으로 넘어온 사람의 수라고 했다. 나는 몇 해 전 그 통계 한 줄에 포함된, 이름 없는 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이번에는 다르게 다가왔다.
숫자는 내가 그해 몇 번째로 국경을 넘었는지는 말해주지만, 무엇을 넘어왔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몇 달을 고생했는지, 어떻게 버텼는지, 어떤 표정으로 검열을 통과했는지는 표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탈북자 수가 줄어든다는 기사를 읽으며 내가 놀란 것은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가 애초부터 나를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몇 년째 다큐멘터리와 소설을 통해 그 시절 이야기를 공개하고 있다. 갇혀 있던 날들, 국경을 넘던 밤, 뒤에 남기고 온 사람들 이야기. 처음에는 그저 겪은 일을 겪은 대로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비슷한 시기 비슷한 일을 겪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기억을 보태 오는 일이 반복됐다. 그때 알았다. 증언은 혼자 말할 때는 경험이지만, 다른 증언과 겹쳐질 때 비로소 기록이 된다는 것을.
가끔 내 이력을 알고 난 사람들이 묻는다. 그런 자리에 있었으니 더 정확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그 질문에는 오해가 있다. 어떤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보이는 것만 보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겪은 통제와 검열의 방식은 내가 있던 위치에서의 방식일 뿐, 다른 지역과 다른 위치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이의 방식과는 다르다. 내 기억 하나로 북한 사회 전체를 말할 수 있다고 여기는 순간, 나는 오히려 내가 그동안 지적해 온 왜곡을 스스로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내가 믿게 된 것은 한 사람의 생생한 기억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조각난 기억이 겹쳐지는 자리다.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이 줄어드는 시대에 우리가 정말 잃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대단한 증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서 온 기억들이 서로를 확인해 줄 기회 그 자체다. 한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왜곡돼 있다. 그 부분성과 왜곡을 걸러내는 것은 결국 다른 목소리와의 대조 뿐이다.
함께 활동하며 만난 사람들과 서로의 기억을 맞춰볼 때마다, 나는 내 기억의 빈틈을 확인한다. 어떤 이는 내가 몰랐던 탄광의 풍경을 말해주고, 어떤 이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농촌 관리위원장의 눈치를 말해준다. 이렇게 서로 대조해 보는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내가 살았던 시절의 북한을 북한 전체라고 착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넘어오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해서 겹쳐 볼 수 있는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경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 잠깐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 오래전에 넘어와 이제야 입을 여는 사람들 — 그 기억들은 여전히 어딘가에 흩어져 있다. 다만 예전처럼 한곳에 자연스럽게 모여 있지 않을 뿐이다.
통계표의 빈칸이 늘어가는 지금, 그 빈칸을 메우는 것은 화려한 증언 한 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서 건너온 기억들이 나누는 대화다. 나는 오늘도 그 대화에 내 몫의 조각 하나를 얹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