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에서 '거래'로 재편되는 북한의 위치
북한 내부 동향을 접하다 보면 최근 들어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정서가 하나 있다. "이제는 우리가 아쉬운 쪽이 아니라 저쪽이 아쉬운 쪽"이라는 감각이다. 두만강대교(북·러)에 이어 신압록강대교(북·중)까지 비슷한 시기에 개통 절차에 들어간 지금, 이 정서를 그저 선전의 산물로만 치부하고 넘어가도 되는지 다시 물어볼 때가 됐다.
북한을 보는 시선에는 오래된 전제가 하나 깔려 있다. 북한은 언제나 아쉬운 쪽이고, 중국과 러시아는 마지못해 도와주는 쪽이라는 전제다. 이 전제 위에서는 이번 두 다리의 개통도 "북한이 다시 한번 지원을 받아냈다"는 익숙한 서사로 수렴한다. 그러나 지난 1~2년 사이 벌어진 일들을 이 전제 없이 다시 늘어놓아 볼 때가 되지 않았는지 모른다.
북한은 러시아의 전쟁에 재래식 병력을 실제로 파병했다. 냉전 이후 북한 외교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결정이다. 이 파병의 대가로 위성·미사일 관련 기술 이전 정황이 뒤따랐다는 관측이 이어졌다. 이는 도움을 청하는 쪽이 아니라 대가를 협상하는 쪽에서나 가능한 그림이다.
중국 쪽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압록강대교에 들어간 자금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중국이 댔다. 이 지점만 보면 "결국 받는 쪽은 북한"이라는 기존 해석이 그대로 유지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돈의 출처가 아니라 문을 여는 시점을 누가 쥐고 있었느냐다. 다리는 2014년에 이미 완공됐다. 그 뒤 12년 동안 문을 걸어 잠근 쪽은 북한이었다. 자금을 댄 쪽이 아니라 개통 시점을 결정한 쪽이 협상의 주도권을 쥔 쪽이라면, 이 12년의 지연 자체를 협상 카드로 읽는 편이 앞뒤가 더 맞다.
외부에서 관찰되는 정황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내부의 반응이다. 러시아 파병과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해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불만과 반감이 쌓였다는 것이 바깥의 통상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실제로 접하는 동향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결은 다르다. 간부뿐 아니라 평범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이 예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상황 자체를 국가 위상이 올라간 증거로 받아들이는 정서가 확인된다. 물론 이 정서에는 선전선동의 몫이 있다. 그러나 선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함께 확인된다. 외부의 예상과 내부의 실제 정서가 이렇게 어긋난다면, 재편의 방향을 다시 읽어야 하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깥의 해석일 수 있다.
만약 이 흐름 위에서 북미 대화까지 재개된다면, 북한은 러시아·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상대하는 삼각 구도의 한 축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경우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것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지원 요청이 아니라, 이미 확보한 지위를 발판으로 한 조건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국경의 문이 두 방향에서 거의 동시에 열리는 동안, 정작 남쪽을 향한 문은 아예 폐쇄되고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북한이 한국을 고정된 적대 관계의 틀 안에 매몰하면서 이미 다른 상대들과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이 비대칭이 길어질수록, 한반도의 셈법은 서울이 빠진 자리에서 먼저 완성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