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규약 개정이 말해주는 것
헌법에 가까운 문서일수록 개정은 신중하게, 그리고 조용히 이뤄진다. 지난 9월 3일 공개된 북한 노동당 규약 개정은 딱 그런 모습이었다 — 별다른 요란한 발표 없이, 그러나 당 역사상 처음으로 '전시(戰時)' 상황을 명문화한 조항들이 새로 들어갔다. 제15조는 전시 당 지도기관 성원의 활동 원칙을, 제27조는 전시 정치국의 권한을 규정한다.
핵심은 권한이 어디로 옮겨가는가다. 전시에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기능을 정치국이 대신해 국방 관련 사안을 심의·결정하고, 평시라면 필요한 간부 인사 절차 없이도 정치국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총비서의 권한도 함께 못박혔다. 정치국·상무위 소집권과 사회권, 주요 간부에 대한 직접 임면권, 부서 해산권까지 규약에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빠진 표현도 눈에 띈다. '평화통일'이 규약에서 삭제됐고 김일성·김정일주의 관련 표현도 줄었다 —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해 온 최근 노선을 당규약이라는 최상위 문서에서 재확인한 셈이다. 전시에는 당대회 같은 내부 선거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조항까지 신설됐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를 지도자 유고나 참수작전 같은 비상 상황에서도 정치국·중앙위 중심의 지휘 체계와 핵 지휘통제 체계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해 정권의 생존성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읽는다. 동시에 김정은 개인의 인사권·기구 권한을 규약에 명문화해 1인 지배를 한층 제도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주목할 점은 이 '전시·비상조치의 제도화'가 대내적으로 갖는 이중적 효과다. 체제 안정을 위한 법적 장치라는 설명과 달리, 이런 조항은 주민에 대한 통제와 동원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할 소지가 있다. 규약 개정 자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 사안이지만, 그 안에 담긴 권한 집중의 방향성은 앞으로 북한 내부 인권 상황을 가늠할 때 꾸준히 살펴야 할 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