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시계 — 탈북민 급감이 남긴 '정보 절벽'
북한은 여전히 바깥에서 가장 들여다보기 어려운 사회 중 하나다. 공식 통계는 신뢰하기 어렵고, 외신의 접근은 제한적이며, 위성사진이나 무역 통계만으로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벌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사는지 알기 어렵다. 그 간극을 메워온 거의 유일한 통로가 탈북민의 증언이었다. 탈북민들의 진술을 통해 우리는 장마당 경제의 실체, 배급 체계의 붕괴, 주민들의 인식 변화 같은 북한 내부의 '지금'을 비교적 현실감 있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는 이 통로 자체가 좁아지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짚는다. 탈북민 입국자 수는 코로나19를 거치며 급감했다. 2020년 229명이던 입국자는 2021년 63명, 2022년 67명으로 곤두박질쳤고, 2024년에도 236명 수준에 그쳤다. 2026년 6월 기준 누적 정착자는 3만 4,536명이지만, 정작 연구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최근에 나온' 증언이다. 특히 서울대학교가 기억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던 '갓 탈북한 사람' 대상 조사는 2020년 이후 중단됐고, 2024년에 일회성으로만 재개됐을 뿐 시계열 조사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조사 대상 탈북민의 비공식 경제 소득 비중이 약 78%에 달할 만큼, 탈북민 설문은 사실상 북한 주민의 실질 소득과 소비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미시자료였다는 점에서, 이 공백은 단순한 통계 결손이 아니라 1990년대 중반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이행 과정을 추적해 온 시계열 연구의 단절을 의미한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이 공백의 성격이다. 탈북민 입국 감소가 왜 하필 '자료 절벽'으로 이어지는가. 그것은 북한 사회 역시 우리가 바라는 속도와 방향이 아니라, 그들만의 논리로 매우 빠르고 예측 불가능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미 정착한 탈북민들의 증언만으로는 이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탈북하는 순간, 그가 가진 북한에 대한 정보는 그 시점에서 시계가 멈춘다. 이후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 — 새로운 통제 방식, 경제 정책의 미세한 전환, 주민들의 인식 변화 — 는 그의 증언 범위 밖에 있다. 다시 말해 탈북민의 증언은 무한히 갱신되는 살아있는 정보가 아니라, 탈북 시점에 고정된 하나의 스냅샷이다.
이 점에서 탈북민 증언은 언제나 '탈북 시기'를 기준으로 층위를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2015년에 탈북한 사람의 증언과 2024년에 탈북한 사람의 증언은 같은 무게로 다뤄질 수 없다. 전자는 이미 10년 가까이 지난 북한의 단면이고, 후자만이 비교적 '현재'에 가까운 정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바로 그 '가장 최신 층위'가 가장 빠르게 얇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입국자가 줄면서 신선한 증언의 절대량이 줄고, 그 결과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정보의 무게중심은 점점 더 과거로, 즉 실제 북한 사회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시점으로 쏠리게 된다.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가 이런 시차를 의식하지 못한 채 과거의 증언을 현재형으로 오인할 위험은, 정보의 양이 줄어드는 것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이 정보 절벽은 단지 학술 연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 인권 실태를 파악하고 국제사회에 알리는 작업, 대북 정책의 현실성을 검증하는 작업 모두 결국 '지금 북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제로 한다. 그 전제가 흔들리면, 인권 담론도 정책 논의도 현실과 유리된 채 과거의 북한을 근거로 미래를 설계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제언
1. 탈북민 증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때 탈북 시기를 명시적 변수로 구조화해, '오래된 증언'과 '최신 증언'이 뒤섞여 하나의 '북한 인식'으로 뭉뚱그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2. 신규 입국자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정착 지원 절차 초기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인 조사 체계로 제도화해, 소수의 입국자로부터라도 최신 정보의 밀도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3. 탈북민 증언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적 정보 채널 — 외부정보 접근 활동을 통한 북한 내부 반응 모니터링, 국경 지역 교역·통신 동향, 위성 데이터, 탈북 브로커나 국경 지역 종사자 네트워크를 통한 교차 검증 — 을 병행 강화해 증언의 공백을 부분적으로 메워야 한다.
4. 통일부·학계·시민사회 간 기존 원자료 접근성을 높이고 협업 체계를 마련해, 적은 표본으로도 시계열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5. 궁극적으로는 탈북민의 절대적 유입 감소 자체가 정보 공백의 근본 원인인 만큼, 탈북 경로의 안전성을 높이고 탈북 이후 정착 과정에서 이들의 증언이 갖는 사회적·학술적 가치를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 또한 장기적인 해법의 일부로 고려되어야 한다.
북한은 계속 변하고 있다. 우리가 그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창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때다.